결혼 후의 삶
나는 남편과 3년 전, 2019년도에 결혼을 했다. 모든 사람들이 그러하듯, 나 역시도 결혼이 어떤 것인지, 내가 과연 결혼을 해도 괜찮을지, 결혼을 하고 나면 나에게 어떤 삶이 펼쳐질지 너무 궁금했다. 그러나 우리 주변에 결혼 후 삶의 현실을 알려주는 사람들은 아무도 없었다. TV나 SNS 등을 통해 보면 결혼하고 너무 행복하게 잘 살고 있는 사람들같이 보여도 실상을 알면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많았고, 반대로 내가 보기에 너무 안 맞는 사람들끼리 결혼했는데 생각보다 서로에게 잘 맞춰 사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러나 어느 매체를 통해서든, 그게 연예인이든 주변인이든,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그 사람들의 결혼 일상이 아니라, 결혼생활 중 가장 좋은 날들일 것이다. 그들 모두가 꾸며 입고, 가능한 가장 행복한 순간들만을 포착하여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일 것이다. 주변 사람들은 자신의 결혼 생활에 대해 시시콜콜 말해주지 않았다. 나보다 더 일찍 결혼한 주변의 친한 친구도 없었거니와, 3년이 지난 지금은 많이들 유부녀가 되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부간의 자세한 이야기를 묻는 것은 실례였고, 이런 주제에 대해 자연스럽게 얘기할 기회도 많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결혼 후의 삶을 다루고 있는 영화가 궁금해졌다. 그러던 차에, 어느 날 자주 들어가던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이 영화를 추천해주는 글을 읽었다. 그리고 찾아보니 스칼렛 요한슨이 주인공을 맡고 있어서, 더욱이 이 영화가 궁금해졌다. 그녀는 내가 정말로 좋아하는 배우 중 한 명이다.
이혼 이야기
영화 "결혼 이야기"는 결혼 후의 삶을 다루고 있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사실 이 영화는 이혼을 진행중인 부부의 이야기를 보여주고 있다. 그들은 이혼이라는 과정을 거치고 있지만, 부부 사이에 아이가 있었고 어쩔 수 없이 관계를 유지해야만 했다. 또한 둘은 같은 직장에서 일하고 있어 이 둘 사이에 얽혀있는 일들도 많았으므로, 이것을 정리할 시간도 필요했다. 처음 영화의 시작은 찰리(애덤 드라이버)와 니콜(스칼렛 요한슨)이 서로의 장점을 나열한 편지를 읽는 내레이션으로 시작한다. 얼핏 보면 이 편지는 둘의 사랑이 진행 중일 때 쓴 편지 같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 글은 부부가 이미 이혼을 결심한 시점에 작성한 편지이다. 이 둘은 상담 과정에서 이렇게 쓴 편지조차 읽지 않겠다며 싸우는 모습을 보여준다. 나는 이 편지의 내용을 이미 알고 있기에, 도대체 이 사랑 넘치는 부부가 왜 이혼에 이르게 된 것인지 의문이 생기지 않을 수가 없었다.
니콜은 원래 이혼 과정에서 최대한 변호사를 개입하지 않고 간단히 해결하려 하였다. 둘은 이혼을 결심하긴 했지만, 상식이 통하고 정이 남아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주변의 권고에 마음을 바꾸고 우연히 이혼 전문 변호사인 노라를 소개받는다. 니콜은 노라를 만난 이후 울면서 속내를 털어놓았다. 찰리는 결혼 전 무명감독이었으나 결혼 후에 니콜의 지원을 등에 업고 승승장구했다. 반면 니콜은 LA에서 주목받는 신인배우였음에도 결혼 후에 찰리를 따라 뉴욕으로 거주지를 옮기면서 배우로서의 커리어가 끊겼다. 이에 니콜은 점점 자신감을 잃어갔고, 찰리가 자신을 배우로서 진심으로 인정하지 않는다고 느끼게 되었다. 또 사실 이 둘은 관계를 더 이상 갖지 않는 상태였고, 니콜은 찰리가 다른 여자를 만났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노라를 만난 이후 니콜은 찰리에게 이혼 소장을 송달했고, 별거까지만 생각하고 이혼을 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던 찰리는 당황했다. 이 와중에 아들인 헨리는 아빠인 찰리를 경계하고, 이 모습에 찰리는 양육권을 빼앗길 걱정까지 생기면서 둘의 감정선은 고조된다. 이후 이들은 서로 더 힘든 공방전을 이어가게 되면서 언성을 높이고 싸우게 된다. 이들은 처음에는 의도하지 않았지만 이혼 소송을 거치면서 힘들고, 아프고, 어려운 이혼 과정을 거쳤고, 이후에 니콜은 다시 배우이자 감독으로 성공하게 되었다. 이들은 1년 뒤 다시 만나게 되었고, 니콜은 새 남자 친구도 생겼다. 이때 아들 헨리가 "내가 사랑한 찰리"라는 극 중 초반의 니콜이 쓴 편지를 찰리에게 읽어달라고 요청하여 편지를 읽어주던 찰리는 이내 눈물을 삼킨다. 이 모습을 조용히 밖에서 보고 있던 니콜도 복잡한 심정으로 전남편과 아들을 바라본다. 이들은 결국 찰리를 서로에게 번갈아 보내면서 끝이 난다.
이 영화를 보다보면, 서로를 가장 사랑한 사람일수록 서로를 가장 아프게 만드는 사람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서로가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싫어하는지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세상 그 누구보다도 사랑하던 사이의 사람들이었지만, 헤어지는 과정은 생각보다 너무나도 끔찍했다. 나는 이혼을 경험한 것도 아니고, 이혼을 경험하는 과정을 주변에서 지켜본 적도 없어서 확실하게 말할 수는 없지만, 그럼에도 이 영화는 정말로 그 과정을 현실적으로 잘 다루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인지 "결혼 이야기"는 베니스 영화제에 출품되었고 최종 평점 3.7점으로 공동 2위에 랭크되며 압도적인 호평을 받았다. 실제로 이혼을 경험한 사람들에게도 굉장히 호평을 받은 것으로 알고 있다. 내가 생각했던 결혼 후의 삶에 대한 이야기는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혼의 과정에 대해서는 꽤나 잘 보여준 것 같아서 혹시나 이혼이 궁금한 사람들, 혹은 어떻게 사랑하던 부부가 이혼에 이르는지가 궁금한 사람들은 보아도 좋을만한 영화이다. 그리고 이미 이혼을 한 사람들 역시도 공감하며 볼 수 있고, 또 한편으로는 위로받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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